우,결. 떠나간 알군- 그대 빈자리

 나는 <우리 결혼했어요.>를 자주 보는 편이다. 그게 꼭 봐야겠다는 의지가 발현된 경우는 없고, 그냥 돌리다가 본다. 그것도 재방송으로. 그 프로그램이 고정으로 자리 잡기 전에, 설날특집이었던 <우리 결혼했어요.> 가 했을 때 그걸 보고 또 보고 또 본 나머지 정형돈이 계란에서 껍데기를 씹을 때마다 같이 인상을 구기고, 알렉스가 장윤정한테 귤껍데기에 관한 핀잔을 줄 때마다 바닥에 굴러다니던 귤껍데기가 갑자기 눈에 밟혀 내 손이 다 민망했다. 젓가락이 꽂힌 와인병을 보며 정형돈과 내가 리모콘을 활용하는데 있어서 조금 공통점이 있다는 걸 발견하고는, 조금 오버해서 내가 혹시 지금 삶을 잘못 사는 게 아닐까하고 나를 되돌아봤다. 나도 정형돈 못지않게 게으른 건가! 라는 느낌을 받은 거다.


 여하간에 우리 결혼했다고 말하는 스타들의 가장 큰 공통점은 ‘우와! 우린 이거 정말 현실감 넘쳐서 정말 스캔들 날까봐 겁나요. 하지만 우리는 연기중이예요! 설마 저 상황에 제가 정말 신상을 찾겠어요?’ 라고 끊임없이 시청자를 세뇌시키는데 있었다. 그들은 아예 처음부터 리얼한 거짓말을 표방하고 나왔다. 아무도 그들을 보고 ‘진짜 결혼했군요!’ 하고 생각할 필요가 없게 만들었다. 아무리 그들을 봐도 어차피 스캔들도 나지 않을 것 같다. 우리까진 아니더라도 나만해도 일주일에 몇 번이나 그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사실 그들은 일주일에 한번 보면 마는 사이가 아닌가? 그 상황에 웬 스캔들? 난, 다 아는 걸 가지고 ‘시청자와 제작진이 속고 속이고 꼴값을 떠는군요. ㅉㅉ’ 까지 가지 않더라도, 굳이 뇌 내려놓지 않더라도 다들 그냥 재미로 그들을 본다고 생각한다. 왜 그들과 결혼이란 명제가 붙었는지 마음에 들진 않아도, 단순히 재미로 본다면 그들은 재밌다. 하다못해 크라운J가 만들었던 그 사탕베개가 얼마나 기발하고 귀여운 이벤트였는지, 장삿속 기념일들에 치를 떨던 나를 화이트데이는 좋은 거구나 하고 생각하게 만들었다니까? 물론 재미있는 프로그램임에도 사람 속을 불편하게 만드는 부분은 분명히 있었다. 뭐 더 이상은 받아들이기 차이.


 남들이 뭐라고 느꼈던, 나는 이전의 네 커플이 아웅다웅 다투던 그때가 좋았다. 제일 짜증났던 두 남녀가 사라진 <우리 결혼했어요.>는 오히려 낯설다. 어째서 낯선지 말하기에 앞서서 일단 제일 싫었던 남자는 알렉스다. 이유라면 글쎄. 막 껍질을 까서 입에서 굴리던 키세스를 손으로는 만지기 싫은 이유랄까? 이따위로 말해도 아무도 모르겠지만 여하튼 알군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알군. 자네가 보여준 이상적인 남자상이 세상의 남자를 변화시킬 거란 착각은 우리도 차마 못한다네.” 라는 거다. 좀 더하면 ‘자네는 분쟁의 씨앗! 존재가 죄악이라네!’ 일까? 너무한가?


 베드트레이까지 바치지 않더라도, 노래를 부르다 중간에 꽃이 튀어나오지 않더라도, 가끔 운동가서 같이 간 여자친구는 내팽개치고 농구에 빠지더라도 굳이 알군과 비교돼야 하는 좌절감을 맛볼 필요 없는 남자들이 불쌍해서 이기도 하고, 진짜 사랑하지도 않는 주제에 어쩌면 사랑의 결론이라고 생각되는 부분과 아무렇지도 않게 맞닿아버린 알군이 미워서이기도 하고, 사랑하지도 않는 주제에 잘도 사랑해주시는 뻔뻔스러움이 특정 남자군의 전유물일까 걱정스럽기도 하고 여러 우려가 겹쳐 나는 알렉스를 볼 때마다 리얼하지만 새빨간 거짓말의 끝이 어디일까 걱정하다 지쳐, 알렉스가 신애의 발을 닦아줄 때는 내 발까지 오그라드는 참을 수 없는 가려움에 결국 채널을 돌리기도 했었다. 뭐라 해도 결국, 그 리얼리티의 영역에서만 존재했어야 할 사랑이 아무렇지도 않게 연기로, 가짜 리얼리티로 TV에서 값싸게 팔려나가는 것이 싫었던 거다. 도매도 그런 도매가 없이 훌렁 팔려나가 세상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며 정형화되는 바람에 졸지에 없는 취급 받은 정형돈의 사랑은 역으로 내게 동정표를 듬뿍 받았다.


 반대로 여자 중 싫은 쪽은 수단을 위해서 남자를 비교하며 휘두르던 서인영쪽이 아니라 사오리였다. 이건 굳이 장황한 설명은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서로 좋아하지 않는 주제에 정형돈 혼자 다 뒤집어쓰고 돌 맞아야 하는 상황으로 몰아가는 게 싫었다. 정형돈을 자극하는 척 하며 맘 속 깊은 진심을 말해도 혼자 돌을 피해가는 그 요령이 싫었다. 잘해보고 싶다고 징징거릴 나이는 지나놓고 대화 없이 뭐라도 같이 해보자는 무모라니, 상대방한테 아무리 관심이 없다 한들 그래도 기본적인 대화는 주도했어야 되는데. 하다못해 정형돈같이 자기한테 관심 없는 남자랑 뭘 하려고 하면서 ‘이거 내가 하고 싶은 거 하자’는 시간 때우기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몰라준다고 알아달라고 찡찡거리면 문제가 해결되는 건 갓난아기시절 한정이다. 그나마도 무한한 애정과 관심을 쏟는 부모님에게나 잘 통한다.


 여하간 사오리가 원한 건 알렉스 반이라도 닮은 남자였고, 거기에 맞춰 한발 나아간 형돈이를 생각하면 갑작스럽게 그 커플이 빠진 게 아쉽다. 뒤이어 나온 커플 황보-현중은 낚시를 하겠다고 바다에 나가 6시간 넘게 대화가 증발하는 커플이던데, 그 사오리식 쨍알거림이 없는 황보를 보고 있자니 피디도 아닌 내가 방송분량이 걱정될 정도. 뭐 차차 나아지지 않겠냐만.


 그나마 싫었다가도 ‘화분’을 부르며 ‘아, 정말 가짜라고 해도 저 정도면 진짜 사랑하는 걸 수도 있겠다.’는 대단원의 속임수의 막을 내려 떠난 알렉스-신애 커플의 빈자리를 메운 휘재-여정커플은 ‘재수가 조금 없긴 했어도 엄청 대단한 알군의 파워오브러브’가 그립도록 만들었다. 이유는 너무 담백해주시는 휘재님의 눈 못 맞추기 덕분인데, 준비한 것을 하면서 상대편의 눈을 보지 않는 그 뭔가가 꼭 ‘국어책 읽는 여배우’만큼 뷁스러워서다. 게다가 나한테도 순정적인 사랑은 있었다는 느닷없는 회고의 인터뷰라니.{아니 뭣보다 그 정도 상처가 없으면 그게 연애 좀 했다는 사람이냐? 없으면 연애계 여전친(여자친구 전남친)}


 이미 ‘능숙하게 눈도 못 맞추는’ 그대의 민구스러움을 보며 ‘이휘재=이바람의 공식이 머릿속에서 떠나간지 오래건만 그따위 변명은 집어치워라!’ 했다. 새삼 변명은 캐릭터 정립을 위한 것인가? 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 차라리 내 족과 손이 민망하게 만들었던 그대 알군이 돌아오라고 외쳐 버릴 ‘뻔’. 대 국민 사기 결혼 프로그램이면 사기를 쳐야지. 바람 이미지가 고민이었으면 무릎팍도사에 나갔어야지. 이건 뭐 개인 이미지쇄신 프로그램도 아니고. 핏칫펫

by 泓演浪 | 2008/05/18 03:52 | TV본다 | 트랙백 | 덧글(0)

트랙백 주소 : http://whyn.egloos.com/tb/1710049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