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포스팅은 설국열차의 감상평입니다. 감상평 할 때 스포일러를 넣지 않는 방법을 모르겠어서 영화를 관람하지 않은 분께는 감히 읽지 마시라 하겠습니다. 저는 매우 단순한 사람이며 주문이 까다로운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읽으시면 불쾌하실 수 있습니다. 반말로 작성됨으로 그 또한 참고부탁드립니다.
일반적인 지구종말 영화의 맥락으로 보면 설국열차는 나의 취향이 아니다. 허무맹랑 하더라도 종말을 다루는 영화라면, 미련할 정도로 주변인을 희생해서 대의와 인류애를 우선시하는 영웅이 나오는 영화가 취향이다. 다소 촌빨날린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감독이나 제작자가 그런걸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영화를 보고 난 이후에 찾아오는 불쾌감이랄까, 하다못해 주인공이 목숨을 걸고 가족애라도 보여주지 않는다면 필연적으로 버림받을 약소국가 하층민으로서 거부감이 든다. 미국만세를 그렇게나 싫어하면서도 미국 영웅들이 지구를 외계인으로부터 구하거나 빌어먹게 커다랗기만한 운석으로부터 구해낸다고 하면 일단 얌전히 앉아서 보는 이유다. 그들은 모두를 살리고 싶다. 단지 그럴 여력이 없을 뿐. 그렇게 믿으며 종말 영화를 보면 마음이 편해진다. 그렇게라도 무언가 남기고 지구에서 인류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나는 이 지구가 영원히 인간의 것으로 남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이 파괴적인 인류의 종말이 올 것이며 그 종말 속에서 몇 명의 인간만은 바퀴벌레처럼 살아남아 새 시대를 맞이하며 전 인류를 기억해줄 것을 기대한다. 말하자면 인간이 환경이나 지구를 우습게 여기는 것은 싫지만 그럼에도 인류의 종말과 흔적이 모두 사라지길 기원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렇기에 누구라도 확실히 살아 남기를 바란다. 그리고 살아남은 것들은 서로를 위해서, 보다 많은 인간의 생존을 위해서 애쓰기를 바란다. 그 방법이 윌포드의 열차 생태계처럼 그릇되거나 비인간적이라고 해도 일면 공감하고 마는 이유이다. 게다가 길리엄은 우월감에 찌들어 윌포드의 친구임에도 묘한 희생정신과 사명감으로 꼬리칸의 지도자가 되기로 하지 않는가? 그런 그가 없었다면 열차는 애초에, 모든 죽은 것들의 살아있는 무덤이 되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모처럼 남친과 영화관에 가서 본 설국열차는 예고도 전혀 본 적 없고 사전 지식도 전무했다. 그냥 남친이 보고 싶다고 해서, 보게 된 영화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대부분 안봤다. 봐봐야 괴물, 마더 정도. 괴물을 보고 느낀 것은 하면 안되는 이야기를 하는 방법을 아는 감독이라는 생각이었다. 하면 안되는 이야기란 우리나라에서 괴수영화를 하면 안된다는 이야기다. 칠광구는 괴수영화이기 때문에 망한건 아니지만 어쨌든 이야기를 할 줄 알고 모르고의 차이는 두 영화를 보면 느껴진다. 마더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나라에서 모정을 부인하는 것은 어색하고 이상한 일이나 봉준호는 그 얘기를 하고야 만다. 그것도 묘하게 납득할 수 밖에 없게 그린다. 불쾌하고 뇌리에 오래 각인되지만 이야기 전체를 부정할 순 없다. 오히려 한번쯤 생각해 본 터부를 잘 긁어주기 까지 했다. 그런데 그 감독이 그리는 종말이야기라니. 어쩌면 내 입맛에 맛지 않고 불편할 거라는 예상을,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알았어야 했다.
염세적이고 인간에 대한 회의감과 혐오감이 극으로 치우친 사람이 쓴 종말을 소재로한 소설 읽는 느낌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썼던 내 소설 노트를 펼친 느낌이라고 하면 니까짓 게 하고 비웃을 지 모른다. 세련되고 깔끔하며 섬세하게 썼다는 것을 제외하면 글쎄 별로 다를 것도 없지 않을까 한다. 게다가 총알같이 생긴 캡슐에 담긴 편지. 내가 자다가 영화가 좋다 이런 프로그램을 잠결에 본 게 아니고서야 이 모든 전개를 그 한가지 단서로 유추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흑역사에 해당해서 별로 자랑은 아니지만 인위적으로 인류 자체의 개체수 조정을 위한, 지도부로부터 계획된 반란 같은 소재는 이미 사용해봤으니 말이다. (흑역사인 이유는 여성향 동인소설이라서..) 너무도 친절한 영화여서, 잘 만든 건 알겠는데 글쎄 좀 실망했다.
설국열차는 종말을 통해 인간애의 종말을 그리기로 결심한 영화같다. 길리엄은 카티스에게 애초에 윌포드의 입을 막고 그를 죽여 지도자가 되라고 한다. 윌포드에게 도달하기 직전 카티스가 직접 이야기한 자신의 치부는 왜 길리엄이 그를 다음 지도자로 선택했는지 알 수 있게 하는 부분이었다. 내가 원하는 영화라면 카티스는 애초에 꼬리칸 거렁뱅이들을 버리고 가서는 안됐다. 윌포드를 쏴 죽여버리고 총과 칼로 일등석 승객들을 제압하고 기차를 멈춘 뒤 꼬리칸 무임승차 승객들과 함께 당당히 새 인류로서 바깥 세상에 발을 딛고 무지 장엄한 음악과 함께 크레딧 올라갈 때 까지 듬직한 뒷모습이나 보여주며 그래도 인류는 영원하다 했어야 했는데, 그는 그저 그런 바램을 갖고 영화를 봐온 내 뒤통수를 후려치며 케세라-세라- 자신이 구해낸 아이와 끌어안으며 담담히 마지막을 준비한다. 길리엄이 리더를 보는 눈이 없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의 희생으로 살아남은 수 많은 인간이 그리도 허망하게 다시 한 번 종말을 맞이한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결말이다. (카티스가 무력진압을 선택할 수 없었 던 걸 알지만, 결국 그 상황에 무엇을 택하든 그보다 나은 결론이 없다는 것은 알지만, 애초에 그런 상황을 설정한 것은 감독이니까)
하지만 위와 같이 맺음하기에 아쉬울 정도로 잘 만든 영화이며 다섯문단이나 들여서 실망했네 뻔하네 깐 것 치곤, 많은 이들이 보고 영화가 흥행했으면 좋겠다. 더럽고 치사한 부자새끼들을 설득해 배 한 켠 얻어타서 햇살과 육지를 기다리며 표류하는 것 보다는, 더럽고 추악한 윌포드의 제안을 받아들여 브레이크 없는 기차의 선장이 될 뻔 하다가, 그것이 다시 어떤 희생위에 이뤄지는 성과이며, 프로틴 블록의 실체를 알아버린 사람들을 어떻게 통솔할 것인지에 대한 깊은 회의감에- 차라리 많이 죽더라도 인간으로 죽게 하자 선택하는 쪽이 좀 더 멋있는 건 사실이다. 어차피 내일 내가 사는 지구가 멸망하진 않을 테니까.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남친에게, 사실 열차가 다닐 수 없는 곳에 살아남은 사람이 있지 않았으려나 하고 멍청하게 말했다. 봉감독이 설계한 세상은 무려 전세계 빙하기로 바다조차 구경하기 어려운 얼음세상인데 인간이 살아있다면 어디에 살 수 있다는 말인가? 말인가 막걸리인가? 하지만 그 길고 모진 세월을 북극곰이 어딘가에서 살아 남았다면, 인간도 바퀴벌레보다 조금 못한 생명력으로 분명히 어딘가엔 살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평생 얼음벽으로 막힌 철로를 뚫고 끝없이 달릴 것 같았던 열차가 종잇장처럼 휘어지는데도 두 남자의 기원이 담긴 포옹으로 살아남은 아이가 둘이나 되는데, 꼬리칸에서라고 그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을리가. 빙하기가 시작 된 그 겨울이라고 그런 일이 없었을리가 없다고 믿으니, 영화가 한결 편하다. 이것이 콜라곰의 의도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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